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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병상 쥐어짜면 뭐하나···올해만 의사·간호사 206명 사표냈다" 등록일 : 2021.12.29
정광현 서울의료원 행정부원장이 22일 오후 서울의료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정광현 서울의료원 행정부원장이 22일 오후 서울의료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병상은 쥐어짜서 어떻게든 만들어낸다지만, 환자를 돌볼 의료진이 없습니다. 2년간 사명감으로 버텨오던 의사ㆍ간호사들이 ‘이제 더는 못 버티겠다’며 줄 사직서를 냅니다.”

정광현 서울의료원 행정부원장은 2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서울의료원은 지난해 1월 30일 국내 5번째 확진자 치료를 시작으로 2년째 코로나19 전담병원을 맡아왔다. 그간 중랑구 본원과 강남 분원, 생활치료센터 두 곳에서 2만375명의 코로나19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았다. 국내 의료기관 중 가장 많은 코로나19 환자를 돌봤다. 코로나19 사태 시작과 함께 임기를 시작한 정 원장은 자신의 업무를 “의료진들이 다른데 신경쓰지 않고 진료에 몰입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년간 의료원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열손가락에 꼽을만큼 적다. 그는 “2000여명 직원들이 함께 노력한 덕분”이라며 “내부 확진자 발생 시 동선을 일일이 파악하는 등 추가 감염 차단을 위해 애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를 만난 날, 정부는 코로나19 병상확충 계획을 발표했다. 확진자가 연일 쏟아지면서 병상 부족으로 중증환자와 사망자가 날로 최다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다. 김부겸 총리는 이날 “하루 1만명 확진자가 계속 나와도 치료 가능한 수준으로 병상을 확충하겠다”며 서울의료원 등 공공병원을 비워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의료원(본원 기준)의 허가 병상은 655개이나 현재 일반 병상은 208개만 운영하고 있다. 나머지 병상은 이미 285개의 코로나19 전담병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시와 협의해 전담 병상 80개를 더 늘리기 위해 일반 환자들을 퇴원ㆍ전원 시키며 준비하던 와중 여기에 더해 ‘병원 소개령’이 내려졌다.

서울의료원이 운영중인 코로나19 병상 및 환자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서울의료원이 운영중인 코로나19 병상 및 환자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 부원장은 “일반 신규 환자를 받지 않은지는 오래 됐고, 있던 환자들을 내보내는 작업도 어떻게든 노력해보겠지만, 의료진들의 탈출 러시는 막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 상황이라 버텨왔지만 2년 지나도 나아질 조짐이 안 보이니 다들 지쳐서 나가 떨어지는것”이라며 “의료진들에 ‘덕분에’라면서 추켜 세우지만 더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선 안된다”라고 말했다.

올해에만 의사 23명, 간호사 183명이 그만뒀다. 11월 말 기준 의사는 정원 180명 중 153명, 간호사는 800명 정원에 677명 뿐이다. 모집 공고를 아무리 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서울의료원은 종합병원으로 대부분의 진료과 전문의가 다 있다. 그런데 2년째 코로나 환자만 보다보니 관련 없는 진료과 의사들은 커리어를 걱정할 수 밖에 없다. 정 부원장은 “몇달도 아니고 2년씩 자기 과 수술을 장기간 하지 못하니 비코로나 진료과 전문의들의 사직 행렬이 이어진다”라며 “손이 녹슨다고 하소연하는데 말릴 방법이 없다”라고 전했다. 서울의료원은 전공의들을 교육하는 수련병원이기도 하다. 원래 100여명의 인턴ㆍ레지던트가 수련을 한다. 그런데 이들 역시 자기 전공 진료를 오랜 기간 하지 못하다보니 수련을 하지 못했고, 전문의 수료 요건을 채우지 못할 우려까지 제기된다. 그러다보니 할 수 없이 사표를 던지는 전공의들도 늘었다.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의료진들이 지난 16일 오전 코로나19 위중증 환자를 긴급 이송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의료진들이 지난 16일 오전 코로나19 위중증 환자를 긴급 이송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간호사들은 지난해(92명)에 비해 사직률이 2배로 뛰었다. 신규 간호사보다 경력이 오랜 간호사들이 대거 나갔다. 가장 큰 문제는 인건비다. 정 원장은 “공공병원이라 ‘총액인건비제’ 영향으로 종합병원인데도 다른 종합병원 대비 인건비가 낮은 편이었다”라며 “우리 의료원 의사ㆍ간호사들은 공공의료인이라는 사명감으로 일해왔다”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 코로나 사태로 업무는 극도로 많아지는데도 인건비는 그대로인 상황이 벌어졌다. 간호사들의 경우 정부 파견 인력과의 인건비 격차가 발생했다. 의료원 1~8년차 간호사 평균 급여는 수당 포함 월 380만원 수준인데, 중앙사고수습본부 파견 간호사의 급여는 월 900만원 가량(월 23일 근무 기준)이라고 한다. 정 원장은 “우리 간호사들에게 돈을 더 주고 싶어도 의료원에 자율권이 전혀 없다”라며 “3배가 차이나는데 어떻게 붙들 수 있겠느냐”라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 부원장은 “의료원에 자율성이 어느정도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시 출연기관이라는 이유로 세종문화회관 같은 문화 시설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고 운영하도록 제약을 받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부원장은 이번 위기를 넘기더라도 곧 새로운 감염병이 또 들이닥칠 것을 걱정했다. 그는 “병원 앞에 부지가 있으니 가건물이라도 얼른 지어서 의료진을 지원하면 기존 병원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중등증 환자 300~400명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라며 “당장 코로나19가 단기에 끝날 상황이 아니고, 신종 감염병이 들이닥칠때를 대비해서 꼭 필요하다”라고 말했다.